영화·음악 넘어 음식·신발·열차까지…'구독 만능 시대'

입력 2019-09-01 18:26   수정 2019-09-02 01:40

평범한 회사원이던 마이클 두빈과 친구 마크 리바인은 어느 날 만나 “매일 아침 출근 때마다 면도날이 닳아 불편하고 가격이 너무 비싼 게 불만이다”는 대화를 나눴다. 이 둘은 “누군가 알아서 값싸고 좋은 면도날을 집으로 보내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2011년 작은 회사를 하나 차렸다.

배송비를 포함해 한 달에 3달러(약 3600원)만 내면 면도날 네 개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달러셰이브클럽’이 탄생한 배경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지로 서비스를 확대한 이 회사는 2016년 유니레버가 10억달러(약 1조2100억원)에 인수하면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성공 신화를 썼다.


소유에서 ‘구독’의 시대로

달러셰이브클럽은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대표적 사례다. 구독경제는 신문, 잡지 등을 정기 구독하는 것처럼 매달 일정액을 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것을 뜻한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전송) 업체인 넷플릭스가 구독 서비스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월 10달러(약 1만2000원) 정도의 가격에 무제한으로 영화·드라마를 제공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입자 1억5000만 명 이상을 확보했다.

구독경제는 단순히 영화·음악 등 콘텐츠 시장을 넘어 금융, 부동산,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구독’을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독경제는 크게 무제한이용형, 정기배송형, 렌털형 등 세 가지로 나뉜다. 무제한이용형은 넷플릭스와 같이 일정액을 내고 무제한 서비스를 받는 게 특징이다. 정기배송형은 면도날, 칫솔, 식품 등 특정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제공받은 만큼 값을 지불하는 형태다. 렌털형은 정수기, 자동차, 의류 등을 일정 기간 돈을 내고 빌려 쓰는 서비스다.

운동화, 오프라인 매장도 구독

구독 모델은 차량공유 서비스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우버는 지난달 월 24.99달러(약 2만9000원)에 우버 승차 할인, 무료 음식배달 등의 혜택을 주는 구독 서비스를 내놨다. 우버의 공유자전거와 전동킥보드 ‘점프’ 등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버가 구독 서비스로 치열한 모빌리티(이동수단) 시장에서 안정적인 매출을 얻기 위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해석한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매셔블은 “우버가 운송업계의 아마존이 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월 13달러(약 1만5800원)를 내면 상품 할인과 빠른 배송, 무료 영화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아마존 프라임’으로 세계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억1000만 명까지 늘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는 지난달 2~10세 아동을 겨냥한 신발 구독 모델인 ‘나이키 어드벤처 클럽’을 선보였다. 상품에 따라 매월, 격월, 분기별로 신발 한 켤레를 배송해준다. 가격은 각각 월 50달러(약 6만원), 30달러(약 3만6500원), 20달러(약 2만4000원) 수준이다.

매달 하나의 신발을 배송받는 가격(50달러)은 나이키의 평균 아동화 가격(60달러)보다 저렴하다. 구독자가 고를 수 있는 운동화는 100여 가지에 이른다. 나이키는 아이들이 빠르게 성장해 신발을 자주 바꿔야 한다는 점에 착안해 이 같은 서비스를 내놨다. 구독자에게는 냉장고 자석으로 쓸 수 있는 ‘발 크기를 재는 자’도 제공한다. 구독자가 사이즈를 잘못 주문하면 1주일 내 교환도 가능하다.

오프라인 매장도 구독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다. 2015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B8ta(베타)’는 공간을 대여해주는 회사다. 오프라인 매장을 내기 어려운 스타트업 등을 위해 장소를 빌려주고 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내고 ‘베타숍’에 입점하는 형태다. 직접 상점을 내 진출하는 것에 비해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심지어는 대마초 구독 서비스도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등에서 기호용 대마초가 합법으로 인정받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대마초 배달 서비스 업체인 이즈(Eaze)는 이른바 ‘마리화나계의 우버’로 불린다. 스마트폰으로 대마초를 주문하면 몇 시간 안에 집으로 배달해준다.

호주·프랑스 등도 구독경제 열풍

구독경제는 세계 각국으로 퍼지고 있다. 호주에서는 최근 자동차를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인기다. 멜버른에 본사를 둔 카바(Carbar)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자동차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뒤 호주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카바 가입자들은 매달 119호주달러(약 9만7000원)를 내고 다양한 차를 선택해 탄다. 취향에 따라 세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스포츠카 등을 고를 수 있다.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는 무제한 기차 탑승 서비스를 내놨다. 차량공유 서비스 이용자가 많아져 수익이 줄자 청년을 대상으로 한 달에 79유로(약 10만5000원)를 내면 무제한으로 기차에 탑승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구독경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왓챠플레이(영화)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비롯해 면도용품(이노쉐이브), 셔츠(딜리셔츠), 양말(미하이삭스), 꽃(꾸까), 책(플라이북), 와인(퍼플독), 반려동물용품(돌로박스) 등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나왔다.

구독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쓴 티엔 추오 주오라(결제솔루션 기업) 창업자는 “구독 모델이 기업의 미래”라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3년에 전 세계 기업의 75%가 소비자와 직접 연결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오라가 자체적으로 산출하는 ‘구독경제지수(SEI)’에 포함된 기업(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매출은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18% 증가했다. 같은 기간 S&P500 기업들의 연평균 매출 증가율(3.6%)을 크게 웃돌았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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